1. 웃는 광대의 울부짖음
아서 플렉은 희극인이 되고 싶지만, 현실은 조롱의 대상이다. 그는 웃고 싶지만, 웃음은 병처럼 터지고, 슬픔은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사회의 무관심, 복지의 단절, 가족의 거짓말까지… 모든 것이 그를 벼랑 끝으로 내몬다. 영화는 한 개인이 어떻게 악당이 되는가보다는, 그를 그렇게 만든 사회적 구조의 잔혹성을 보여준다. 광대 분장을 한 채 버스 안에서 아이를 웃기다 혼나는 장면은, 이 영화가 어떤 비극에서 출발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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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존재하지 않았어. 하지만 이제 모두가 날 볼 거야.”
아서의 대사는 가시화되지 못한 존재의 분노와 그 울부짖음을 대변한다.
2. 조커가 된 남자, 공감의 단절
아서가 ‘조커’로 변모하는 과정은 잔인하지만 피할 수 없게 설득된다. 총을 든 순간부터, 그는 ‘살인자’이자 ‘해방자’가 된다. 그러나 영화는 단순한 폭력 미화가 아니라, 공감받지 못하는 인물이 사회에서 어떤 괴물이 되는지를 조용히, 그러나 잔혹하게 보여준다. 웃음조차 병이 되고, 말 한마디가 상처가 되며, 모든 연결이 끊어진 세상. 조커는 그런 세상의 산물이며, 영화는 관객에게 “그를 만든 건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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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춤추는 장면은 광기와 자유, 그리고 해방의 미학이 혼재된 명장면이다.
3. 우리는 모두 조커일지도 모른다
조커는 단지 아서 플렉 한 사람이 아니라, ‘모두의 그림자’가 될 수 있다. 영화 후반, 조커는 TV쇼에서 사회에 대한 독백을 던진다. “당신들은 누구 하나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 이는 극단적인 분노가 아닌,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다. 영화는 범죄나 광기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 이면에 있는 인간의 소외와 외로움, 절망을 다룬다. 그래서 조커는 악당이지만, 동시에 가장 인간적인 얼굴을 가진 인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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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미친 사람을 보면 병이라 하지. 하지만 나를 보면 현실이야.”
조커의 존재 자체가 현대사회의 불편한 거울이라는 것을 암시한다.